2019 휴먼스오브금천. 유영선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19-10-11 12:19 조회 : 392회 댓글 : 0건본문
저는 이 마을공동체가 참 좋거든요
이 공동체가 계속 활성화됐으면 좋겠고
우리가 그냥 마을 사업에 중점 되기보다는
사실 저는 정치인들을 움직일 수 있는 시민 단체가
우리 금천구에 있었으면 좋겠어요.
우리 교육적인 문제가 사실 크잖아요
우리 자녀들이 재능이 다양함에도 불구하고
재능에 상관없이 그 학습에 재능 있는
3%의 아이들에 휩쓸려서
100%가 다 학습 위주에 어떤 교육에 치우쳐 있고
이건 너무 심각한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학습으로 성공하는 아이들 3%
그리고 다양한 재능의 아이들이 있는데
그 아이들을 위해서
이런 교육적인 문제에 대해 정말
이 마을공동체를 통해서
우리 엄마들이 한마음을 이뤄낼 수 있는
이런 일 들을 하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Q. 마을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제가 마을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2013년도에 사실 제가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이 초등학교 입학을 하면서 가정 통신문이 하나 왔어요. 그래서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학부모에 바람이 있잖아요. 내 아이를 좀 잘 키우고 싶다. 근데 이제 내 아이를 잘 키우려면 내 아이 친구들이 잘 자라야 되잖아요. 그래서 저희가 1학년 때 초등학교 1학년 학부모 모임을 제일 많이 하죠. 모여서 우리 아이들을 품어보자 이런 이야기들을 같이 엄마들과 공감 하면서 우리가 내 아이뿐만 아니라 우리 안천초등학교 아이들을 한번 품어보자. 우리 아이들을 잘 키워 보자. 이런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1학년을 막 시작하는 3월~5월 사이에 가정통신문이 하나 왔어요. 금천구에서 학부모 리더십 교육을 진행하겠다고 그게 거의 일주일 동안 진행했던 것 같아요. 아침부터 5시까지 한 40시간 정도 그렇게 했고 재능 기부를 40시간 해야 되는 게 있었어요. 금액이 너무 저렴해서 많은엄마들 하고 같이 한번 해보자, 라고 했는데 그 재능 기부 40시간이 걸려서 다른 엄마들은 많이 못 했고 저는 이제 하게 됐죠. 갔더니 이제 금천구에 초,중,고에 다니는 학부모들이 한 30분 오셔서 리더십 교육을 너무 재밌게 듣게 되었고 후에 "함성소리"라는 동아리 모임이 되었죠. 그러면서 이제 마을공동체를 처음에 배우는 걸로 시작을 한 거죠. 하다 보니 이제 마을 공통체가 됐고 그 당시에는 어쨌든 내 아이뿐만 아니라 저희는 학부모 리더십이니까 금천에 아이들도 같이 품어보고 우리 이 아이들에게 리더십 교육을 시켜보자, 이런 마음가짐으로 사실 마을공동체를 마을에 일을 시작하게 되었죠.
Q. 현재 하시고 계시는 일은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요.
A. 제가 6월까지 그 마을 사업 전문가로 독산 3동에서 마을 사업일을 했었는데 6월에 종료가 됐어요. 지금은 잠깐 쉬고 있는 상태입니다. 짐 계획하고 있는 건 10월부터 저희 금천구에 50+센터라고 생기는데요 그쪽에서 근무를 시작하게 됩니다. 어쨌든 마을 사업의 경험으로 또 그쪽에 관심이 있어서 지원하게 됐어요.
Q. 지금까지 여러 마을 활동으로 인한 나의 변화나 주위의 변화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A. 개인적으로는 사실 제가 결혼하기 전에 13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늦게 했어요. 33세 12월이니깐 거의 34살 다 돼서 결혼하고 임신과 출산과 육아를 하면서 독박육아를 했거든요. 사실 여자들이 집에 들어앉아서 육아만 하면 그게 귀한 일이고 대단한 일이지만 자존감도 많이 떨어지고 사실 굉장히 도태된다는 느낌을 스스로 받을 때지요. 근데 아이를 학교에 보내면서 그 교육을 받고 학부모들과 어울렸고 ' 함성소리'라는 동아리가 굉장히 진취적이고 뭔가 변화를 계속하는 그런 동아리였어요. 지금도 저희는 매월 두 번씩 정기 모임을 하면서 꾸준히 만나고 있거든요. 정기 모임도 하고 워크샵을 하고 하면서 그런 시간을 갖고 있는데 어쨌든 그것을 통해서 자신감을 얻은 것 같아요. 이제 아이 육아만 하다가 내가 너무 도태 되어 있어 막 이런 생각을 했는데 그 안에 들어가서 같이 교육받고 같이 호흡하면서 아, 나 죽지 않았어, 살아 있어, 뭐 이런 생각을 좀 했던 것 같아요. 어 나 괜찮아 할 수 있어. 이런 자신감을 좀 얻었던 것 같아요. 그러면서 이제 2013년에 마을교사 등단 시험도 저희가 있었어요. 금천에서 분단 심사도 보고 준비하고 이런 시간이 긴장 되고 그랬지만 나에게 자신감을 준 그런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시간을 거치고 또 2014년에 마을지기 하면서 마을 조사 하면서 함성소리 활동하면서 또 제가 사는 금화마을에 마을지원사업이라고 한 구백만원 따 와서 진행하는 게 있어요. 그래서 제가 그거를 마을에서 같이 진행하고 그러면서 어쨌든 제가 이 안에서 그런 활동들 그리고 제가 2017년도에 마을공동체 지원센터를 도와서 일을 하게 돼요. 2년 동안 여기 위탁되기 전에 여긴 위탁으로 넘어가고 저는 마을사업 전문가로 금청구청에 계약직 임기직 공무원으로 들어가서 2017년 7월부터 올해 2년 동안 독산3동 마을활동을 했죠. 이 안에는 분명히 성장이 있었죠. 저 개인적으로 어쨌든 자신감을 가지고 사회 활동을 할수 있는 한 여자로 발전했다고 할 수 있겠죠. 사실 마을 사업 마을 활동을 하기 시작하면 사람에 따라 다른데 진짜 너무 지치고 힘들었어요. 근데 마을 활동을 할 때는 사실 페이가 없잖아요. 제가 그때 어떤 생각을 했냐면 마을 활동은 이십 만원을 벌기 위해서 일반 직장에서 이백만원 어치의 일을 해야 돼요. 특히 연말 행사가 있으면 아침,점심,저녁 그리고 마을 활동하는 학부모가 있으면 아이가 학교에 있기 때문에 학교 활동도 열심히 할 수 밖에 없어요. 그러니깐 일이 너무 많은 거죠. 또 이렇게 열심히 하시는 분들은 뭔가 신앙이 있는 분들도 많으시더라고요. 가정 돌봐야지 교회 활동 해야지 학교 활동 해야지 금천구 활동해야지 또 마을에서 이런저런 일 해야지 정말 너무 지치고 힘들고 내가 왜 이곳에서 이렇게 해야 하지 그런 생각 가정에선 편안히 좀 많이 깨지죠. 아이를 내팽개칠 수밖에 없으니 이게 현실이잖아요. 근데 내 몸은 마을 어딘가에 계속 가 있고 그래서 남편하고도 저뿐만이 아닐 거예요. 불화나 다툼이 그러나 그런 속에서도 어쨌든 성장이 있었지 않나. 어쨌든 고생 끝에 성장이라는 것도 맛보았고 사회 활동도 하고 있어요. 제가 50+센터에 간 것도 제가 지금까지 쌓아온 어떤 인적인, 물적인 네트워크에 대해서 우리 금천구에서 풀어내면 너무 좋겠다 라는 그 마음이 있어요. 지금까지 사실 계약직으로 일하면서 어, 내가 마을일 재미있을만 하면 계약이 종료되고 마을센터에서도 마찬가지였고, 위탁 가는 과정에서 그랬고 또 독산3동 주민센터에 있을 때도 그렇고 진짜 마음은 나 이제 금천에서 일 안 할 거다, 진짜 마음은 이제 계약직으로 일 안 할 거다. 왜냐면 지금 한참 막 재밌게 일하고 뭔가 할 수 있을 것 같은 데 종료 됐을 때 그 상실감이 정말 상상 할 수 없었어요. 제가 올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