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휴먼스오브금천-나정임 살구여성회 활동가 인터뷰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20-12-09 12:21 조회 : 466회 댓글 : 0건본문
세상을 넓게 바라볼 수 있었던 통로
나정임 사무국장, 지역 사회 발전 위한 활동가로 성장
누군가에게는 살구여성회 활동이 새로운 진로를 향한 징검다리가 되기도 한다. 바로 나정임 전 사무국장의 이야기다. 나 사무국장은 한때 살구여성회의 사무국장으로 활동했고, 지금은 독산동 우시장 일대에서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으로 활동 중이다. 그녀는 과거 살구여성회와의 시간을 소중한 경험으로 간직하고 있었고, 지금까지 활동가로 활약할 수 있었던 발판으로 살구여성회를 회상했다.
일인다역 사무국장의 탄생
만나 뵙게 돼 반갑습니다. 2008년부터 4년간 살구여성회 사무국장으로 계셨는데요. 어떻게 살구여성회와 인연이 시작됐는지 궁금합니다.
아이 둘을 키우면서 가끔 나 자신이 도태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육아 외에도 의미 있는 일에 동참하면서 생기 있게 살고 싶다는 소망도 있었고요. 그래서 생협의 조합원이자 활동가를 시작했고 2007년 ‘금천구 사회복지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사업제안을 했습니다. 이 사업이 금천구 여성 가장들의 경제적 자립을 돕는 내용이었는데, 그중 살구여성회가 여성 가장들의 자조 모임을 맡았거든요. 그때 인연이 시작됐고, 2008년에는 살구여성회의 사무국장을 맡았습니다.
살구여성회 사무국장으로 어떤 활동을 진행했나요?
당시 살구여성회가 굉장히 어려운 시기여서 원래 계시던 회장님이 갑자기 그만두셨어요. 그래서 제가 들어옴과 동시에 회장 역할과 사무국 일을 모두 맡아야 했고, 마침 살구지역아동센터까지 개설해서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죠. 무료 경로급식소와 살구평생학교도 챙겼고, 그렇게 바쁜 날이 2011년 12월까지 지속됐습니다.
일인다역을 하느라 정말 바빴을 거라 짐작이 갑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어려웠던 기억이 있다면 들어보고 싶습니다.
이사하는 일이 참 힘들었어요. 지금 살구여성회가 있는 무지개 상가 4층으로 이사하는 것도 힘들었고, 남문시장 근처로 이사해 급식소 자리를 정하는 것도 힘들었어요. 당시 금천구 안에 무료급식소가 여럿 있었는데 독산동 쪽에만 없었어요. 아동들을 돌봐줄 지역아동센터도 없었고요. 그래서 독산동으로 자리를 정하고, 이사를 하고, 관련 공모사업을 진행하느라 많이 힘들었습니다.
활동가로 도약할 수 있었던 살구여성회
힘든 경험이었지만 지금 도시재생지원센터의 사무국장으로 일하는 데 살구여성회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됐을 거라는 생각도 듭니다.
네, 맞아요. 살구여성회에서 했던 일들이 지금 하는 일의 자양분이 됐죠. 제가 살구여성회 활동을 마치고 사회복지 통합사례 관리사, 마을사업 전문가 등으로 활동을 하다가 2018년 지금 있는 도시재생지원센터 사무국장으로 오게 됐거든요. 이곳에서 주민들의 거버넌스를 담당하고 있는데, 살구여성회에서의 경험이 도움이 많이 됩니다.
그렇다면 살구여성회는 어떤 의미로 남아있나요?
살구여성회를 만나기 전까지는 나만을 위한 삶, 나와 내 가족이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살구여성회 활동을 하며 세상을 좀 더 넓게 볼 수 있었습니다. 저 외에 다른 사람들의 삶에 관심도 갖게 됐고요. 공익을 위한 활동가로 살아가는 계기였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지금은 살구여성회에 계시지 않지만, 만약 다시 기회가 된다면 살구여성회에서 시도하고픈 활동이 있나요?
만약 할 수 있다면 ‘찾아가는 어른 공부방’을 다시 열고 싶어요. 살구평생학교를 열었을 때 시간이나 건강상의 이유로 못 오시는 어르신들이 계셨어요. 그런 분들을 위해 ‘우리가 학습지 교사처럼 찾아가자.’라는 아이디어로 ‘찾아가는 어른 공부방’을 열었습니다. 저희가 직접 찾아가서 수업하던 어르신 중 한 분은 “내 손으로 내 이름 한 번 써보는 게 소원”이라고 말씀하신 분도 계셨어요. 그만큼 배움에 열의가 있지만, 여건상 못 오시는 분들이 꽤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유지가 너무 어려워 얼마 못 가 접었어요. 저는 그 사업이 굉장히 아쉽더라고요.
마지막으로 우리 지역에서 살구여성회가 어떤 단체로 남길 기대하시는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우리나라가 국민소득이 높아지고 선진국 대열에 들어갔다고는 하나 여전히 빈곤하고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미국이 아무리 강국이라 해도 노숙자 문제가 모두 해결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전반의 소득이 높아지고 과거보다 살기 좋은 금천구가 된다 해도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위한 살구여성회와 같은 단체가 오래 활동해야 하고, 탄력을 받아야 한다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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