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휴먼스오브금천-박동완 살구여성회 활동가 인터뷰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20-12-09 12:18 조회 : 338회 댓글 : 0건본문
‘기술’로 봉사하는 살구여성회 박동완 선생님,
얻은 게 더 많았던 13년간의 재능기부
살구여성회에서 ‘기술’을 담당하고 계신 박동완 선생님! 그는 커다란 가방에 매일 공구를 넣고 다니며 필요한 수리와 공사를 척척 해낸다. 덕분에 살구여성회 활동이 걸림돌 없이 술술 흘러갈 수 있었다. 그럼에도 박동완 선생님은 “봉사활동을 더 빨리 시작했다면 좋았을 텐데.”라며 훈훈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재능이 나눔 되는 기쁨
선생님은 어떻게 살구여성회와 인연이 시작됐나요?
제가 사는 지역에서 의미 있는 활동을 하는 살구여성회에 대해 우연히 전해 들었습니다. 그리고 홈페이지에 들어가 회원 가입을 했는데 바로 연락이 오더라고요. 그때가 2007년이었고 제가 40대 중반이었죠. 그때부터 살구여성회에 수리나 공사가 필요할 때 기술 봉사를 했습니다. 좀 더 일찍 살구여성회를 알았더라면 도와드릴 일이 더 많지 않았을까 싶어 아쉬운 면도 있지요.
선생님은 기술이라는 재능으로 봉사하시잖아요. 사실 이렇게 기술적인 봉사를 하시는 분이 별로 없어요.
맞아요. 제가 봉사활동을 다녀보니까 저처럼 무언가 고치고 수리하는 기술로 봉사하는 사람이 드물더라고요. 저는 매일 가방에 공구 일체를 넣고 다녀요. 제가 도착한 곳에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즉시 해결하려고요. 지금도 업무를 쉬는 날이 걸리면 살구여성회 쪽은 무조건 가요.
활동가들이 절대 할 수 없는 공사를 선생님이 처리해주신 적도 있었죠.
독산동 남문시장 근처에 따뜻한 밥집을 세울 때 박양희 회장님으로부터 연락을 받았어요. 급히 부르시기에 가봤더니 이곳 어르신들이 많이 기다리셔서 급식소를 1주일 안에 열어야 한다는 거예요. 발등에 불이 떨어진 거죠. 그래서 근처 철물점에 가서 재료를 사서 공사를 시작했어요. 나중에 따뜻한 밥집이랑 살구지역아동센터를 분리할 때도 전기, 계량기 등을 다 분리하는 공사가 필요했는데 그것도 제가 맡아서 했습니다.
그런 활동을 혼자 맡아 하는 게 쉽진 않을 것 같습니다.
기술적인 부분을 다룰 때 곁에 사람이 있으면 다칠 수 있어 위험 하거든요. 어쨌든 다 같이 잘 지내려고 하는 공사인데 안전하지 않다면 무슨 소용이겠어요. 그런데 살구지역아동센터에 가서 제가 공구 들고 봉사하고 있으면 아이들이 신기해서 몰려들어요. 공구가 무겁기도 하고 잘못 만지면 다치거든요. 그래서 살구여성회에서 봉사할 때면 특히 신경이 더 쓰이죠.
나눔은 반드시 돌아온다는 진리
오랜 세월 선생님이 살구여성회에 크게 이바지해주신 게 분명합니다.
저는 아주 작은 역할 하나 맡았을 뿐입니다. 나사 하나 박는 역할, 불편한 것 치워주는 그런 역할이죠.
살구여성회에서 활동하시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있다면 하나 들려주세요.
어느 날 살구여성회 사무실에 방문해보니 좁은 사무실에 칸막이가 있더라고요. 칸막이 때문에 사무실을 불편하게 쓰고 있었어요. 칸막이를 없애려고 알아봤더니 견적이 꽤 비쌌던 모양입니다. 제게 칸막이를 없애줄 수 있냐고 묻더라고요. 그래서 사무실을 한 시간만 비워달라고 한 뒤에 공구를 사용해 칸막이를 전부 없앴어요. 그걸 혼자 다 없애버리니 활동가분들이 깜짝 놀랐죠. 그동안 칸막이 하나 없애지 못해서 애가 끓었던 것을 제가 해결하니 신기했나 봅니다. 활동가들이 얼마나 좋아하던지요.
그런데 그런 봉사가 조금씩 늘다 보니 제게도 분명 도움이 되는 면이 있더라고요. 제가 지금 다시 취직하려고 준비 중인데 봉사를 10년 넘게 했다고 하니 점수를 후하게 주더라고요. 무언가 기대하고 시작한 봉사는 아니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제게 좋게 돌아온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에게 살구여성회에서의 활동이 어떤 의미인지 들어보고 싶습니다.
처음엔 제 아내가 봉사 다니는 것을 많이 반대했어요. 쉬는 날이면 자전거 타고 여기저기 다니면서 고쳐주고, 얼굴은 새카맣게 타고(웃음). 몸이라도 상할까 걱정이 됐겠죠. 그런데 어느 날은 집에 있으니 왜 봉사 안 가냐고 묻는 거예요. 아내가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봉사하는 저를 받아들이고 자랑스러워하더라고요.
저는 봉사를 다니면서 사람들을 다양하게 만날 수 있었고, 제가 기술적인 면으로 베푼 것보다 마음가짐에 있어 얻는 게 더 많았던 살구여성회 활동이었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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