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휴먼스오브금천-송금옥 살구여성회 활동가 인터뷰
글쓴이 : 마을관리자 작성일 :20-12-09 11:46 조회 : 389회 댓글 : 0건본문
우물 밖 새로운 세상을 만나
송금옥
저도 행복했고 아이들도 행복했고
살면서 40대, 10년 모든 걸 거기 다 쏟아부었어요.
후회 없을 만큼 다 쏟아부었어요.
살구여성회에서 동화읽는어른모임을 시작하다
살구여성회는 언제, 어떻게 알게 되었나요?
제가 결혼을 늦게 했거든요. 그러다 보니 정보가 부족해서 아이들 키우는 데 문제가 있는 거 아닌가 하고 촉각을 세우고 있었어요. 그때 마침 ‘어른들의 동화 읽기’ 라는 주제로 강의를 한다는 벽보가 눈에 딱 뜨인 거예요. 그래서 그냥 간 거지요.
그게 1997년인데, 살구여성회가 시흥4동 김진수 치과의원 자리에 있을 때예요. 정확히 모르겠는데 그 당시 여성학자들이 와서 주부들에게 여러 강의를 했어요.
그 강의에 몇 명이나 왔어요?
한 30명 좀 넘었죠. 그때 강의를 듣고 동화읽는어른모임이 전국에 있는 줄 알게 됐죠. 그래서 강의를 들은 사람들끼리 우리도 금천동화읽는어른모임을 만들면 어떻겠냐 이런 이야기가 나와서, ‘어, 좋다’ 해서 1기가 만들어진 거지요. 몇 명은 빠지고 우리가 4월에 그 강의를 들었는데, 5월에 금천동화읽는어른모임 ‘함박웃음’이 결성됐어요. 그러니까 살구여성회에서 주최한 강의를 듣고, 독자적으로 단체를 하나 만든 거지요. 어린이도서연구회 소속 금천동화읽는어른모임을.
‘98년에 살구여성회에서 2기 모집해서 1, 2기가 같이 공부했고 3, 4기 신입회원은 함박웃음 자체에서 모집했어요.
살구여성회에서 동화읽는어른모임 외에 다른 활동들은 안 하셨나요?
살구여성회에서 밥집을 운영하게 됐을 때, 우리 함박웃음 회원들이 반찬 한 가지씩 해가고 그랬어요. 저도 호박 볶아간 기억이 나요. 어린이 프로그램을 하면 우리 아이들 데리고 자연체험도 가고. 살구여성회에서 정말 편안하게 모임을 잘 했어요.
살구여성회에서 나오게 된 계기는 뭔가요?
금천구에 구립도서관이 생겼어요. 회의에서 도서관하고 우리 모임하고 공통분모가 있으니 모임 장소를 도서관으로 옮기는 것이 어떻겠냐는 의견이 나왔어요. 다들 그게 좋겠다 했는데 살구여성회에서 난리가 났어요. 살구여성회는 함박웃음을 살구의 한 조직으로 생각한 거지요. 살구여성회가 주관하는 강의를 듣고 태생을 해서 그 장소를 쓰면서 활동하고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우리는 강의를 듣고 독자적으로 했으니까 살구여성회하고 상관없는 거 아니냐 그래서 약간 좀 부딪친 게 있었어요. 그러다가 김주숙 교수님께서 통 크게 ’그래, 어차피 이 지역에서 활동할 사람들이니 어떠냐, 그럼 좋다. 가서 열심히 해라’ 하셨죠.
‘함박웃음’이란 금천동화읽는어른모임 이름은 어떻게 만들어졌나요?
살구여성회에 ‘함박웃음’이란 표구가 있었어요. 한국 검도계의 거장인 오병철 선생님께서 선물로 주신 거래요.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하다가 표구를 보고 ‘저 함박웃음 너무 좋지 않아? 우리 저걸로 하자’ 이렇게 함박웃음이 됐어요. ‘함박웃음’ 이름은 놓고 가라 이런 얘기도 있었고,소소하게 그런 일들이 있었어요.
‘함박웃음’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을 만들다
그럼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은 언제 어떻게 만들었나요?
함박웃음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 회보를 공부하는데, 거기 용인에 있는 느티나무도서관이 소개됐어요. 그걸 보고 ‘우리도 해보면 안 돼? 우리도 하자’ 그랬더니 ‘그래요, 우리 합시다. 내일 모래 답사부터 갑시다’ 그래서 직접 도서관도 보고, 관장을 만나 이런저런 얘기도 하고 왔어요. 그때부터 이렇게 합시다, 저렇게 합시다 진행을 했죠.
장소를 구한다고 7, 8월 한여름에 두 명씩 짝을 지어 금천구를 다 돌아다니다 마침 회원 시아버지 상가건물에 세 들어 있던 사람이 나간대요. ‘그럼, 거기 하자’ 그래서 은행나무사거리에 도서관을 열게 됐어요.
책은 우리가 가지고 있는 책 중에서 깨끗한 책으로 가져오고, 출판사에서 후원도 좀 받고, 돈 주고 사기도 하고 그렇게 해서 2002년 9월에 개관을 했죠. 그때 함박웃음 아버지 모임에서 에어컨을 기증했어요. 아버지 모임이라고 해봤자 우리 남편들이고, 돈도 우리 돈이죠. 쌈짓돈.
도서관을 만들고 운영하려면 어려운 일이 참 많았을 거 같아요.
어려움은 어느 조직이나 다 있다고 봐요. 그런 갈등이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데 말이에요. 서로 잘하려고, 발전시키려고 자기주장을 하고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에 그런 부분이 있었어요.
힘들었던 건 도서관을 만들 때 제일 힘들었었죠. 저희가 가진 돈이 3300만 원이었어요. 잊어버리지도 않아요. 처음에 회원들이 1기부터 3기까지는 300, 4기는 100, 5기는 50만 원, 근데 그 돈이 누구는 참 눈물겨운 돈이었어요. 누구는 대출받아서 내고, 누구는 도배로 돈을 벌어 내고, 가족들, 지인들한테 후원도 받고, 전단지를 만들어 우리가 직접 금천구에 있는 병원, 약국, 식당 일일이 찾아다녔어요. 하여튼 그렇게 모아진 게 3300만 원이었어요.
그걸로 건물 얻고, 도서관 실내장식도 하고. 실내장식을 할 때는 좋은 일 한다고 좀 싸게 해주시고 했어요. 회원들도 도서관에서 밤새워가며 인테리어며 책 라벨 작업을 열정적으로 했어요. 개관하는 날 막 서로 울고… 아유, 내가 옛날이야기하고 있는 거 같네.
근데, 혹시 옛날에 ‘책. 책을 읽읍시다’ MBC 프로그램 기억나세요? 기적의 도서관이라고 도서관 만들어주고 그런 프로그램. 그때 유재석하고 김용만 둘이 우리 도서관에 왔었어요. 그래서 TV 방송을 통해 은행나무어린이도서관이 소개되기도 했어요.
우리들의 행복했던 시간은 가고
지금도 도서관에서 활동하시나요?
한 10년 전 관장한테 ‘그만하겠다’ 하고 딱 끊었어요. 계속 안 하다가 작년에 도서관에서 이사직을 맡아달라고 해서 이사로 이름만 올리고 있어요. 제가 제일 싫어하는 거죠. 완전히 푹 빠져서 하는 것도 아니면서 애매하게 하는 건 좀 그래요. 후배들 일하는데 이건 아니네, 저건 잘하네 그러면 선배를 머리에 이고 있는 거 같잖아요.
도서관과 함박웃음 활동이 선생님 삶에 어떤 변화를 주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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